신군부 핵심 5인 마지막 생존자 정호용 전 국방장관 사망
전두환이 이끈 신군부 ‘핵심 5명’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이자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에 관여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향년 94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정 전 장관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이며,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황영시 전 육군참모차장과 함께 신군부 중요 인물 5인으로 꼽혔습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특전사령관에 오르며 신군부 권력의 중심부에 섰던 그는 제5공화국에서 육군참모총장을 지내고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뒤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신군부 핵심 인사들도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은 2021년 잇따라 숨졌고, 황영시 전 계엄부사령관과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도 2022년 사망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정호용 전 장관마저 13일 사망함에 따라, 5·18 유혈 진압에 책임이 있는 신군부 핵심 5인방은 모두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관여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였으며, 반란 이튿날 육군 특전사령관에 임명되었습니다.

이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으로서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에 대한 무자비한 무력 진압 및 살상 진압에 관여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그는 전두환 보안사령관, 노태우 수도경비사령관 등과 함께 신군부 ‘핵심 5인’ 중 한 명으로 꼽혔으며, 휘하의 3·7·11공수여단이 광주 진압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이후 관련 재판을 거쳐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징역 7년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사법적 판단과 특별사면 이후에도 그는 자신에게 광주 진압 작전 지휘 권한이 없었다며 생전까지 책임을 부인했습니다.
진상 규명의 한계와 과제: 남겨진 역사적 진실
신군부 핵심 5인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생존자였던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의 사망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은 더욱 어렵게 됐습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2021년 5·18과 자신이 무관하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제출하는 등 책임을 부인해 왔으며, 살상 진압 책임을 끝내 외면했습니다.
유일한 생존자마저 숨지면서 5·18 당시 발포 지휘체계와 신군부 수뇌부의 개입 과정 등에 대해 핵심 당사자의 입으로 진실을 확인할 길은 사라졌습니다.
- 1980년 5월 계엄령 발동 당시 공식 지휘계통은 아니었으나 민주화운동 기간 최소 네 차례 광주를 방문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 대법원에서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인 ‘상무충정작전’을 지원한 책임이 인정되었습니다.
- 발포 결정 과정, 신군부 수뇌부의 개입 정도, 행방불명자 소재와 암매장 의혹, 민간인 집단살해의 책임 소재는 여전히 밝혀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남은 진상 규명은 기록과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5·18기념재단 측은 신군부 핵심 관계자에게 직접 진실을 확인할 기회는 사라졌으나, 발포 지휘체계와 행방불명자 소재 등 규명되지 않은 과제를 기록과 자료를 통해 끝까지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